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내건 글씨 한 점의 필자가 뒤바뀐 일이 관장 퇴진으로 이어졌다. 유홍준 관장은10월21일 박물관 공식 입장문에서 개인 소장 유묵 ‘일반시국은’의 전시 출품 관련 논란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같은 날 저녁 MBC는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의 발표를 인용해 이재명 대통령이 사직안을 재가했다고 보도했다. 사의 표명에서 그친 상태와 구분되는 후속이다.
서명은 같은 ‘박원근’, 그렇다고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박물관은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에서 이 글씨를 애국지사 박원근의 유묵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외부 제보를 받은 뒤8월10일 철수했고,9월7일 조사 결과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글씨라는 결론을 발표했다. 논란이 된 서명 ‘박원근’이 박중양이 과거 사용한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글씨의 문구는 밥 한 그릇에도 나라의 은혜가 담겼다는 뜻으로 전시됐지만, 문구의 의미와 실제 쓴 사람의 확인은 별개 문제였다.
공식 조사 설명은 이름 하나로 필자를 정한 것이 아니다. 서예·근현대사·고문헌·보존과학 분야 전문가7명이 필적과 인장, 행적과 표구를 교차 검토했다. 글씨의 획 처리와 인장 문구가 박중양 관련 자료와 맞았고, ‘한인’이라는 표현과 일본 유학 행적도 함께 살폈다. 장황은 근대 일본식 표구 방식으로 분석했다. 박물관이9월에 공개한 판단 근거이며, 이번 취재가 작품을 감정해 새 결론을 낸 것은 아니다.
검증 미흡 사과에서 관장직 사의로
21일 입장문에서 유 관장은 박물관에 대한 신뢰와 직원들이 쌓은 가치가 자신의 실수로 무너졌다는 취지로 사죄했다. 국민과 애국지사 유족, 직원들에게 책임을 인정하며 관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명예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개인 소장품의 출품이라는 사안과 박물관의 검증 책임이 함께 걸린 사건이다. 입장문에 없는 고의나 금전적 동기, 별도 징계·수사 결과까지 사실로 단정할 근거는 없다.
박물관은 지난해7월21일 유 관장의 취임을 알렸고, 그는 이번 사의문에서15개월을 돌아봤다. 동시에 연구직들이 준비한 특별전의 의의까지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작품 철수와 필자 조사 결과는8·9월의 일이고, 이번에 새로 달라진 사실은 관장의 공식 거취 표명과 사직안 재가다. 과거 검증 결과를 오늘 처음 밝혀진 발견처럼 쓰거나, 작품 한 점의 문제를 나머지 전시품 전체의 오류로 확대할 수는 없다.